달 빛 요 정 역 전 만 루 홈 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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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B B S


  융기운동(2022-03-27 08:28:49, Hit : 128, Vote : 8
 http://colorcommentator.tistory.com
 책을 냈어요.

안녕하세요?
설거지 일당을 뛰는, 1996년생, 27살 요정의 어린 팬입니다.
이름은 이용규라고 하고요.

광고가 될 수 있으니 책 이름을 적진 않겠습니다. 아무튼 주제 넘게도 책을 내게 되었는데, 20대 하층계급 남성이 바라본 세대론에 대한 르포르타주입니다. 사회를 보는 시선에 제 개인적인 컴플렉스를 엮어봤어요. 닉 혼비의 <피버 피치>나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같은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여기 글을 쓰는 건...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에요. 제 인생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바로 요정이거든요. 요정이 내 영웅이 되는 과정을 책에 썼구요.

제가 처음 간 장례식, 그게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길고 장황한, 아래 글을 요정과 여기 네트에 남아있는 여러분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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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상
  
“이렇게 형성된 근성은 그대로 정체성이 되었다. 그 정체란 방어기제, 비주류라는 자각, 언더독이라는 자의식이었다. 열심히 살기보다는 질투를 배우고, 치열하게 살기보다는 계급의식을 앞세우며, 더불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탓하기에 익숙해질 20대를 살게 될 운명을 스스로 찾아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교 2학년이 되자마자 전공이 아닌 광고 기획을 공부했다. 스물한 살, 로빈 윌리엄스라는 환영을 쫓아 연극과 신입생이 되었다. 그러나 준비 없던 내게 연극이란 고되기만 했다. 로빈 윌리엄스라는 우상, 창작이라는 꿈, 연극무대라는 환상 같은 것을 잠시 버려둔 것이다. 그래도 마케팅은 재미있는 공부였다. 적성과는 조금 멀다는 걸 깨닫는 데 2년이나 걸린 게 문제였지만.

마케팅 기획서에는 타깃 연령을 분석하는 내용이 꼭 필요하다. “삼성 노트북 펜S의 주 타깃인 2025 Z세대 대학생은…”, “서브웨이의 잠재적 소비자 후기 밀레니얼은…” 같은 식으로. 시장 상황 분석이나 제품 소개 같은 것보다 어쩌면 훨씬 중요한 일이다. ‘가볍고 휘발되는 관계가 훨씬 편안하니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후렌드(WHOriend)를 만나며’, ‘콘텐츠에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 판플레이’를 즐기면서 ‘모르는 노래라도 차트에 있으면 들어보지만’,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순 없으니 구독형 소비를 추구한다.’ 이를테면 2017년에서 2018년 사이 전문가들이 분석한 우리의 특징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트렌드코리아』나 <대학내일>의 팩트북에서 이런 표현들을 찾아내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는 낯선 이를 사귀는 데 능하지 않다. 카톡은 한 시간마다 몰아서 답장한다. 인스타그램을 하지만 태그는 달지 않는다. 옛날의 아이스버킷챌린지부터 오늘 하루에도 몇 개씩 생겨나는 챌린지까지 나에게는 늦게 도달한 유행이었을 따름이다. 뿐인가, 나는 애플뮤직 월 9.99달러에도 손을 벌벌 떨면서 무료체험 한 달이 지나자마자 구독을 해지한 전력이 있다. 넷플릭스도 왓챠플레이도 유튜브 프리미엄도 다 그런 식이었다는 말이다. 하룻밤 술값에는 관대하면서 구독료에는 집안 기둥 뽑힐 것처럼 겁내는 건 내가 생각해도 모순이지만.

무엇보다 멜론 TOP 100에 코웃음을 치며, 마음에 드는 뮤지션을 찾으면 디스코그라피째로 음원을 사 모으는 것이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해도 음악만은 소유해야겠어, 이런 것이었을까.

그래도 김난도 교수나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기깔나는 CF를 만들어 보겠다는 혈기는 광고 동아리에 들어가자마자 시무룩해졌다. 신입생들의 막연한 꿈은 광고 천재 이제석이었지만, 우리를 맞이한 건 현업에서 쓰는 전문용어들이었다. BTL 이나 USP가 다 뭐란 말인가? 용어들이야 공부하면 알게 되는 것이다. 끝내 광고기획자의 길을 접어버린 건 그런 게 아닌 자아성찰의 결과였다. 이른바 우리 세대의 특성과 내가 조금 동떨어져 있다는 것. 글재주 칭찬은 좀 들었어도 카피는 안 와닿는다고 했고, 열심히 분석해 내놓는 인사이트란 뜬구름만 잡는 터무니없는 얘기들이거나 ‘인디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세미나 도중 책상 위에 올라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키팅 선생의 철딱서니 없는 제자였던 게다.

그것은 당연히 켜켜이 쌓여온 내 유년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박명수와 뉴캐슬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간을 되돌려 크리에이티브한 광고기획자가 되기 위한 가망을 살릴 수만 있다면, 하련다. 2010년으로. 일곱 살에도 열 살에도 기회는 아직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날 선택한 길이 완전히 굳어져 버린 터닝포인트는 바로 그때였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2010년이 벌써 십 년 전이라고 하면 굉장히 놀랍다. 그러나 그 시절은 내 머릿속에서 벌써 어떤 세련됨 가득한 시기로 미화되었으니, 옛날은 옛날인 것 같다. 그랬다. 2010년은 박지성과 기성용의 지휘로 월드컵 16강에 진출했고, <무한도전>은 여전히 재미있었으며, 영화 <아저씨>가 흥행하던 시대였다. 집권 여당의 이름은 - 일단 이름이 멋지기로는 정치사에 손꼽힐 ‘한나라당’이었다. 사마귀 같은 내 사랑 뉴캐슬은 강등된 지 1년 만에 승격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갓 승격한 언더독의 결기와 흘러간 명문 팀의 바래져 가는 자부심이 아직은 적당히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였다. 물론 원빈이 그 이후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을 거라는 건 아무도 몰랐다. 한나라당이 그 쿨한 이름을 버리고 ‘자유한국’이나 ‘미래통합’ 같은 보급형 관념어를 선택하는 퇴행을 보일 줄도 몰랐다. 뉴캐슬이 한 번 더 2부 리그로 떨어질 줄도 정말 몰랐고. 이 모든 게 별 관계없는 사실들 같은가? 이것이 김난도 씨나 대학내일 20대연구소의 인사이트이고, 적어도 이때는 오늘보다 혐오가 덜하던 시절이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고 생각해보면 그럴듯해질지도.
 
이런 시기가 흘러가거나 말거나, 나는 다른 것들을 탐닉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이었고, 유년기가 대충 정리되어야 하는 시기였다. 취향과 사고는 물론 학업 성적과 미래가 결정되는 시절이었다는 말이다. 조금쯤 안타까운 일이다. 그 무렵에 심취한 건 일단은 학업이 아니었다. 소설과 사회과학을 읽고 로큰롤과 홍대 인디밴드를 찾으며 음원을 모았다. 낮에는 캐치볼을 했고, 새벽마다 축구 시청에 열중했다. 공부마다 재미있는 다른 유희에 빠져드는 것은 어린 날의 누구에게나 있는 일일 테다. 문제는 그 학업과 맞바꾼 유희라는 것이, 하나같이 어설픈데 단단한 어떤 근성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야구는 축구나 농구와 달리 함께할 친구를 찾기 어려운 운동이었고, 두세 달에 한 번씩 팔꿈치를 다치곤 했다. 여전히 축구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그럴듯한 팀의 팬이 아니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에서 내세울 것이라곤 예쁜 블랙 앤 화이트 유니폼과 가끔 강팀과의 경기에서 활약하는, 그래서 큰 구단으로 이적할까 불안해지는 군계일학의 선수 한두 명뿐이었다. 내가 닳도록 좋아한 소설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었다. 마치 승률 1할 8푼의 꼴찌팀 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이입한 결과였다. 기왕 사회과학을 공부하려고 했다면 눈높이에 맞는 것부터 배워야 했다. 그런데 나는 『미국민중사』, 『정치경제학』, 『자본론』처럼 지금 읽어도 어려운 책을 집어 들었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 느껴지는 비주류적 혈기가 내 지적 허영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Movement, 혁명 같은 것들. 나는 결국 단어에 가슴이 뛰는, 텍스트와 관념으로 얽힌 엉성한 이념가 지망생이 되어버렸다.

이런 기이한 취향으로의 이탈은 의미심장하다. 바로 우리 또래 집단의 정상적 궤도에서 벗어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누구나 공감하는 것과 공감하지 못했다. 친구들이랑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텐가?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농담에 소질이 있었다는 것인데, 아마 무의식에서 만들어낸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근성은 그대로 정체성이 되었다. 그 정체란 방어기제, 비주류라는 자각, 언더독이라는 자의식이었다. 열심히 살기보다는 질투를 배우고, 치열하게 살기보다는 계급의식을 앞세우며, 더불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탓하기에 익숙해질 20대를 살게 될 운명을 스스로 찾아들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몰래 농구 연습을 했고 일부러 맨유와 첼시의 경기를 챙겨보려고도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끝까지 읽으려고 노력했다. 모두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던 것이고, 결국 누구의 이해를 구하는 대신 함께할 목소리를 발견했다. 달빛요정의 목소리는 투박하고 묵직했고, 윌 헌팅을 치유하는 숀 맥과이어와 영문학 선생 존 키팅의 그것은 나지막했다. 다른 우주에서 온 이방인이 2010년의 한국에서 붙들고 울먹일 수 있는 대사는 “It’s not your fault”였고, 이어폰으로 밖을 거닐 때 들어온 것은 ‘스끼다시 내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의 심각한 콤플렉스를 감싸는 우상이 되었다. 


첫사랑이란 선택할 수 없는 것이고, 특히 정수리에서 풋내가 진동하는 남학생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소심한 남자아이가 우상을 갖는 과정은 훨씬 까다롭다.

남다른 취향을 단단히 쌓아 올리고 있을 그 무렵, 학교에서 돌아오면 컴퓨터 앞에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들었다. 주로 ‘뮤즈Muse’나 ‘오아시스Oasis’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락에 심취한 아이들은 그들로 입문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애들은 보통 밴드부에 가입하거나 악기를 다룰 줄 알았다. 전자기타를 칠 줄 안다면 메탈리카Metallica로 시야를 넓히고, 스틸기타를 더 좋아한다면 라디오헤드Radiohead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리코더도 겨우 잡는 수준이었기에 그냥 인터넷을 떠돌며 맘에 드는 음악을 찾아들었다. 방구석에서 탐험한 홍대의 뮤지션들은 아름다웠다. 나도 <앵콜요청금지>를 수백 번 들었다. 국카스텐과 십센치가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한희정과 심규선의 목소리만큼 담백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번화가에서 홀로 끼니를 때울 때 비스트로나 다이닝에 들어가긴 곤란했다. 너무 멋져서는 곤란하다. 다가갈 수 없이 화려해서도 안 된다. 내가 마음을 의탁한 이는, 라이브 공연으로 영접한 실물에 실망해 팬들이 돌아선다던, 생김새부터 노랫말까지 투박하기 짝이 없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뮤지션이었다. 그때는 2010년 봄이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동이 틀 때까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모두 들었다. 그는 곧 나의 커트 코베인이 되었다.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1집 ‘절룩거리네’)
 
가지려 하지 마, 다 정해져 있어
세상의 주인공은 네가 아냐
(3집 ‘스무 살의 나에게’)

 
청춘이란 그에게 절룩거리는 존재였다. 그의 가사가 바라본 보통의 인생은 하나같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스끼다시 같은 것이었다. 어차피 우린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세상은 나를 원하지 않지만, 이 멋진 세상을 그냥 받아들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대책 없는 청춘송가 또한 우리의 것이라고 힘주었다. 인생의 영토가 주공 1단지에 그친대도, 무겁고 안 예쁘게 생겼어도, 스스로 행운아라고 일컬으며 그래도 하루를 살아내는 동력을 주던 것이다. 그는 그런 노래를 했다. 투박하지만 그게 좋았고, 가슴 속의 묵직한 근성을 다독여주는 목소리였고, 집 밖에서 찾은 최초의 동류(同流)였다.

그의 음악을 듣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인생이 야구 경기와 같다면 만루홈런의 주인공은 어차피 내가 아닐 것이다. 월요일에도 쉬지 않는 우리만의 야구에서 나는 보통 패전처리나 대타, 잘 해봐야 9번 타자일 것이다. 주전을 꿰찬 애들은 내가 아니라 다른 얄미운 선수겠지. 버킷햇을 멋지게 걸치고, ‘우리’ 엄마, ‘우리’ 집이라는 말에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않는, 노래방에서 힙합과 알앤비를 둘 다 기막히게 소화해내고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3루타를 친 것처럼 살아가는 녀석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요정이란 우상은 존재만으로도 힘이었다. 상처 입은 날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잠들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속내를 멋대로 지껄이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멋대로 생각하며 스르륵 하루를 마무리한다면 아무래도 괜찮았다. 궁상맞고 찌질한 아이에게 우상이 줄 수 있는 것으로는 넘치게 충분했다.

어릴 때 못 뗀 낱말 몇 개의 참뜻을 알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애정은 그를 생각할 때 배어나는 코끝 시큰하고 애틋한 마음, 공감이란 그의 노랫말 자체, 위로란 그에게서 내가 받은 모든 것…, 이런 식으로 말이다.

유년의 아이돌을 맞이한 것은 그대로 신앙이 되었다. 문제는 그때쯤 나는 오로지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의 협주만이 음악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악보도 못 보는 락 근본주의자라, 의지할 뭔가를 갈구했기 때문일까. 원인이야 어쨌든 나는 무엇이든 근본주의에 빠져드는 성깔이었던 것 같다. 이게 바로 홍대병일 텐데, 콤플렉스의 또 다른 증상이었다. 


그 성깔은 매달 떡볶이 값을 아껴 음원을 모으고 명절에 용돈이 생길 때마다 음반을 사다 놓는 습벽으로 발전했다. 그땐 그렇게 하는 걸 의무라고 여겼다. 좋아하는 밴드에게는 누구나 그러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우리 세대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은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다. 꼬박꼬박 CD와 MP3 파일을 모아놓는 것은 이제 대량생산 시대의 가내수공업처럼 괜한 일이 되었다.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취한다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좋은 노래는 여전히 많고 누구나 그걸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노래가 받는 제일의 대접이 멜론 재생목록 맨 윗자리 정도라는 건 내게는 미안한 일이다.

내친김에 궤변을 쏟아내자면, 홍대병이라는 나의 방어기제는 힙합과 EDM과 업템포 아이돌로 주류가 변하고 ‘락’이란 장르가 소멸하는 대세에 대한 처연한 항거였으며, 멜론 차트 1위곡이 누군가 온종일 음원을 스트리밍해서 만든 결과물이건 아니건 “그래도 노래는 좋던데?”라는 모두의 정의 불감증에 대한 카산드라 같은 예견이었다. 뭘 더 어쩌겠는가. 소유욕 그득한 어린애는 시대의 물결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양파 속에 감춰진 조그만 알맹이라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가장 겉에 있는 껍데기였고, ‘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작은 껍데기였다. 동심원을 최대한 파고 들어가면, 시간이 지나 힙합과 영합한 배신자들이 다 떠나간 자리에 홀로 남아서 중고 음반과 600원짜리 음원을 끌어모으며 그 유쾌한 영화 <스쿨 오브 락>에 눈물짓다가 벽에 온통 ‘Rock will never die’를 써놓고 최후를 맞을 것이라 상상하는 가련한 꼬맹이가 있었다. 이 자의식을 감싸던 것이 요정이었지만, 우리의 만남은 얄궂게도 짧았다. 2010년 11월 7일은 서늘한 늦가을이었다. 나는 망자들의 빈소가 칸칸이 늘어선 여의도 성모병원 지하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요정은 11월 6일 사망했다. 삼일장 이틀째 오전이었다. 장례식장은 그야말로 적막했다. 배달원들이 아침부터 이르게 오는 조화를 나르고 있었다. ‘OO상사 대표이사’, ‘OO대학교 XX학번 동기회’ 같은 것들은 건너편의 다른 상갓집으로 향했고, 요정과 친분이 있다는 유명한 가수들이 보낸 조화들이 우리 쪽으로 왔다.

빈소는 몇 칸 되지 않았다. 복도에서도 신발을 벗는 문밖부터 영정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내 낯익은 영정이 보였다. 요정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앞으로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앉은뱅이 식탁이었다. 식탁을 다 덮는 하얀 비닐 식탁보가 깔려 있었다. 생수, 소주, 맥주, 종이컵, 그리고 편의점에서는 본 적 없는 상표의 음료수들이 비닐을 누르듯 놓였다. 신경 써서 안경을 닦았다. 눈을 비비지 않으면 이게 바닷가 수산시장 양념집인지 상가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장례식장에 처음 가본 것이다.

나는 계속 망연히 서 있었다. 태어나 처음 가는 장례였지만 문상 예절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요정은 일주일 전 쓰러졌고 의식을 금방 되찾지 못했으며, 그러는 사이 나도 마음의 준비를 다 했었다. 여느 날처럼 헤드폰을 쓰고 모니터 앞에 앉았는데 실시간 검색어에 모처럼 그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인디 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 씨(38)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30시간 만에 발견되었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전날 밤 음악 방송에 나왔나, 하던 것은 참 천진한 기대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의 죽음을 다루는 기사는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요정이 무슨 내용으로 얼마나 풍부한 음악을 했는가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활고에 스러진 인디 가수 - 88만원 세대의 현주소’. 하나같이 이런 내용을 갖다 붙였는데, 빈소를 직접 보고 있자니 그걸 부정할 도리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뭔가가 치밀어 올라 병원을 빠져나왔다. 주말의 여의도가 을씨년스러워서인지 세상도 마찬가지로 텅 비어 보였다. 내가 둘 꽃은 한 송이밖에 없을 것이었다. 다른 것을 놓아야 할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레코드점을 찾아 영등포 교보문고로 갔다. 뜻밖에 요정의 음반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익숙한 앨범 재킷이 가장 잘 보이는 판매대에 가로놓여 있었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그리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1.5집 <Sophomore Jinx>. 그가 죽지 않았다면 없을 일이었다.

낚아채듯 음반을 사서 다시 빈소로 갔다. 앞 조문객이 하는 걸 보고 그대로 두 번 절을 했다. 조화를 놓고 다시 상주와 맞절했다. ‘어떤 관계’이시냐는 물음에 팬이었다고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마치 증거라도 된다는 듯 음반을 건네주었다.

여의교를 건너 대방역으로 돌아가는 길은 서늘했다. 옷을 너무 얇게 입었었다. 동경만 했던 서울이 전에 없이 밉살스러워 보였다. 돌아가는 지하철 내내 풍경을 외면했다. 이어폰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요정의 음원이 모인 MP3는 외로울 때를 대비한 노아의 방주였다. 하지만 함께할 목소리를 잃었을 때 방주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은 예상하지 못했다.

덤덤해지기, 그리고 받아들이기. 열다섯은 이 연습을 시작해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봄에 사랑했던 이를 가을에 잃는다는 건 슬펐고, 누구를 떠나보내는 일이 간단할 리 없었다. 우상을 보낸 일상은 여전하지 않았다.

 
로빈 윌리엄스가 그 자리에서 나를 안아준 것은 그해를 넘길 무렵이었다. 그 아저씨는 <It’s only us>를 부른 로비 윌리엄스와 이름을 헛갈리던 배우였을 뿐인데, 어느 순간 나는 그의 목덜미에 안겨 있었다. 겨우내 음악을 멀리하고 몇 달 동안 <무한도전>만 봤다. (무슨 천재 뮤지션의 방황을 상징하는 문장 같아서 되게 웃긴다.) 당시 무한도전은 방송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우리를 웃겼다. 일단은 웃는 일이 필요했고,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잠깐 마음을 맡기는 것은 상실을 극복하는 것보다 편했다. 새벽 재방송을 보다가 소파에서 잠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컴퓨터로 방송을 틀어놓고 밥을 먹었고… 그런 식으로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졸다가 깼는데 리모컨이 잘못 눌렸는지 영화 채널이 틀어져 있었다. 맷 데이먼을 제이슨 본으로만 알고 있을 때였는데, 그가 더벅머리로 등장하는 영화가 나왔다. 시린 겨울날이었기 때문에 소파에서 일어나기도 싫었는데, 그렇게 모로 누워 감상하게 된 작품이 <굿 윌 헌팅>이었다. 저 유명한 대사가 나오는 영화다. “It’s not your fault.” 나는 실로 오랜만에 울었다. 왜 울었을까? 모르겠다. 설명하기도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행이 모두 자기 것인 양, 그것을 모두 짊어진 것처럼 사는 친구가 있다면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열한 살 이래 그렇게 무너지듯 울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요정의 음악을 만난 오월 이래 무언가에 진심으로 감응한 것 역시 그때가 처음이었다. 허파가 들먹거리고 콧등이 뜨거워지자, 나는 내가 완전히 세상과 끊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외면하던 것이 이제는 사라진 우상의 음원이나 그와의 작별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나의 유년에서 애써 도망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필요했던 것은 웃는 게 아니라 우는 일이었다. 달빛요정이 함께 도시의 밤을 바라보는 듯한 존재였다면, 로빈 윌리엄스는 내가 목덜미를 감싸고 매달릴 수 있던 스승이었다. <굿 윌 헌팅>, <죽은 시인의 사회>, <미세스 다웃파이어>, <알라딘>과 <바이센테니얼 맨>…. 그의 영화를 모두 찾아보면서 나는 다시 함께할 목소리를 구했다. 힘든 날이면 그의 다문 입에서 배어 나오는 따뜻함에 마음을 맡길 수 있었다.

로빈 윌리엄스는 2014년 8월 자살했다. 그때 나는 요정이 죽었을 때보다 많은 일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슬픔을 가눌 수는 있게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열네 살에서 열일곱 사이에 만들어진 취향은 바꿀 수 없다고들 한다. 나는 좋아하는 게 생길 수는 있지만 새로운 우상을 만들 수는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내게 있어 우상이란, 다른 걸 다 숨겨도 드러내고 싶은 단 하나의 자부심이다. 살면서 “왜 이런 걸 좋아해?”란 물음을 수도 없이 받았다. 뭐 뉴캐슬, 박명수, 야구, 프로레슬링, 엄청 많다. 그럴 때마다 애써 설명하는데 지쳤고 얼버무리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키팅 선생님과 요정에게만은 그럴 수 없다. 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럴듯한 대답을 준비해두었다. “꼭 모두가 좋아하는 여자애를 첫사랑으로 삼을 필요는 없지 않냐?”

이 단락을 쓰는 지금도 이유 없이 코가 시큰거린다. 마침 요정은 나처럼 나약한 추종자들을 위해 이런 노랫말도 준비해두었다.
 

누구에게나 삶이란 건
오즈를 찾아가는 길거나 짧은 여행,
그 길에서 널 만나고 사랑하고
가끔 떠나보내고.
(2집 ‘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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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80   몇년이 지나도 형님의 노래에 힘을 얻네요  연어스끼다시 2022/07/15 32 0
9079   올해는 다함께 대면으로 요정님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될까요  김성민 2022/06/10 67 3
9078   형이랑 스타크래프트 하고 싶어요.  전형준 2022/05/27 69 1
9077   음원을 냈어요 [1]  밥상 2022/04/08 215 8
  책을 냈어요.  융기운동 2022/03/27 128 8
9075   가끔 방송에서 요정님의 음악이 들립니다.  디노 2022/02/15 147 2
9074   음악의 힘은 대단한것 같아요.  반달곰 2022/01/26 131 5
9073   감사합니다.  이심온 2021/12/30 138 4
9072   기일이 지났지만 다시 왔습니다.  zune 2021/11/10 207 22
9071   벌써 11년...  홍국희 2021/11/09 179 30
9070   11주기.  thom 2021/11/06 248 32
9069   오늘따라 너무 그립습니다.  박성은 2021/10/30 178 27
9068   형... 형은 지금까지도 내게있어서 영웅이야  이재선 2021/10/30 220 35
9067   나쁜 코로나19 [1]  김성민 2021/08/19 357 51
9066   여전히 그립네요.  geno 2021/08/05 262 54
9065   고등학생이후에 오랜만에 방문합니다  요한갓 2021/08/01 298 57
9064   전염병도 날씨도 포악합니다 참 [1]  Warn 2021/07/31 311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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